커피프린스1호점

프롤로그
01. 한달전, 은찬의 25시
02. 한달전, 한결의 25시
03. 이거 짜고 치는 고스톱 아냐?
04. S11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05. 마녀를 실망시킬 순 없지.
06. 뽁뽁이를 빌려줄까요?
07. 좋은 개는 대들지 않아
08. 에스프레소-사장에게 대드는 용기를 주는 커피
09. 비엔나에는 비엔나 커피가 없다.
10. 숙취에는 레몬 커피
11. 우리 가게가 이렇게 바뀌었어요
12. 이유 있는 반항
13. 여자라서 행복해요
14. 부드럽고 따뜻하게, 카페라떼
15. 마린보이
16. 사랑은 숨길 수 없는 비밀
17. 모르는 여자
18. 눈부신 추억이 날 아프게 하네
19. 그날
20. Loving you
에필로그


프롤로그
가게 앞으로 쪽빛 외제 승용차 한 대가 들어와 섰다. 막 가게문을 열고 청소를 하던 홍 사장은 대걸레질하던 손을 멈췄다. 차에서 베이지색 가죽 재킷을 입은 남자가 내리고 있었다. “스타일 죽이는구먼. 달구지 기막히고.”
설마 이쪽에 볼일이 있을까 했는데 가게 쪽을 보았다. 째리는 눈이다. 남자는 낡은 간판과 플라스틱 장미꽃으로 발을 쳐놓은 유리창을 보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촌발 난다 이거야?”
홍 사장은 괜히 밸이 꼬여 눈을 부라렸다. 그래도 전혀 위협적인 눈은 되지 못한다. 나이가 들면서 남방계 몽골로이드의 깊고 큰 쌍꺼풀이 처져가는 탓이다. 허시퍼피처럼.

“고만 힐끔거려라. 기분 나쁘게.....쯧. 가라, 가. 너한테 커피 안판다.”
홍 사장의 투덜거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한심하단 표정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여기서 커피를 마시느니 버스 정류장 자판기 커피를 마시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표정을 하면서도 남자는 기어이 가게 쪽으로 걸어와다. 입구 유리에 붙여놓은 구인 광고를 읽어보더니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니가? 안됐다. 나이에 걸리겠다.

“아직 영업전입니다” 라고 말하려던 홍 사장은 눈을 찌푸렸다. 햇빛을 등져서인지 남자의 머리 뒤로 광채가 이는 것 같았다. 눈이 부셔서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보니 남자는 어느새 창가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커피 주세요.”
“아, 네”
반사적으로 대답해 버렸다. 홍 사장은 ‘이게 아닌데.....’ 하면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벽에 걸린 뻐꾸기시계가 울기 시작했다. 11시다. 이젠 영업 전이란 말도 못하게 생겼다. 엄연히 오전 11시부터 영업이라고 써 붙여놓았으니. 남자는 인근에서 보기 드물게 세련된 댄디보이다. 훤칠하고 잘생긴 용모, 스물일곱, 여덟쯤 되었을까. 엄청 긴 다리를 꼬고 앉아서 창밖을 쳐다보고 있다. 얼굴은 날카롭게 생겼는데 분위기는 껄렁하다. 여자 스카프나 만들면 딱 좋을 법한 천으로 만든 바지에, 마치 제 거죽인 것처럼 몸에 쫙 달라붙은 가죽 재킷. 게다가 바지통은 6인치도 안 될 것처럼 폭이 좁다. 그 좁은 가랑이에 다리가 들어간다니, 완전 기형 아냐? 세상이 참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사내자식 다리가 저게 뭐야. 비실비실해 가지고는. 홍 사장은 지방으로 뭉쳐진 땅딸막한 몸을 굴려 커피를 날랐다. 댄디보이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맛있게 드세요.”
기껏 말했는데 댄디보이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가까이 있으니 향수 냄새가 났다.
‘사내자식이......’라고 생각하며 얼굴을 찡그렸던 홍 사장은 갑자기 시선이 날아와 뜨끔했다. 잽싸게 미소를 짓는데 댄디보이는 홍 사장 너머 뒤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주방과 벽과 바닥. 구석구석을 살폈다. 가게 밖에서 짓던 표정과 똑같았다. 이게 돼지우리야, 마구간이야? 하는 눈빛이다. 그래서 뭐. 네가 뭔 상관이야. 그만 좀 보시지. 손님이면 손님답게 차나 마시고 갈 것이지 어디서 눈을 희번덕거려. 어허. 떽! 어디 주인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그러나. 왜 눈을 못떼고 그러시나? 이 아저씨 분위기가 멋지냐? 혼자 생각으로 건들거리던 홍 사장의 시선에 번쩍거리는 것이 포착되었다. 커피 잔으로 손을 뻗는 댄디보이의 손목을 감긴 시계다. 주방으로 돌아가려던 홍 사장은 끌리듯 다가섰다.

“저....이 동네 분이 아니신 것 같은데....”
화이트골드의 빛을 발하는 그것은 말로만 듣던 스위스 명품 시계였다. 어쩔 수 없이 홍 사장의 자아는 약간 비굴해진다.
“누구 만나러 오셨어요?”
“네. 근데, 다른 직원은 없습니까?”
손가락 끝으로 커피 잔을 돌리면서 댄디보이가 물었다.
“아, 있었는데 얼마 전에 그만뒀어요. 그래서 저기 입구에 붙여놨잖아요. 알바생 구한다고.”
홍 사장이 말하는 얼마 전이라는 것은 사실 8개월 전이다. 아르바이트생이 한 명 있었는데 장사가 안 돼 그만두게 했다. 홍 사장 혼자서 해도 한가할 정도로 손님이 없어서 월세내기도 빠듯한 지경이다. 아내는 보증금을 빼서 포장마차라도 하라고 성화다. 그래서 가게를 내놓긴 했는데 두 달 때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다 다행히 며칠 전에 겨우 임자가 나타나 계약을 했지만 홍 사장은 아직 집에다 가게가 안 나간 걸로 해둔 상태다. 포장마차라니 엄두가 안 나고 말고, 서른아홉 먹도록 커피숍사장 말고 해본 게 없는걸.

“혼자서 청소하고 커피 만들고, 서빙하고 돈 받고, 그게 다 됩니까?”
“상황이 이러니 혼자 해야지 어떡합니까. 요즘 성실하고 야무진 아르바이트생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멀티플레이어시네요.”
“하하, 제가 재주가 좀 많긴 하죠.”
홍 사장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커피 만드는 건 어디서 좀 배우셨습니까?”
커피 만들어 파는 데 무슨 자격증이라도 따야 한단 말인가.
“따로 배우러 다니진 않았어도 좀 일가견이 있죠. 대학 다니는 내내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까 전공보다 이게 더 손에 익었지 뭡니까. 하하.”
“이 가게 하신 지는 얼마나 됐습니까?”
“올해로 3년짼데, 여긴 목이 안 좋아서 말이죠.”
“목은 좋은 것 아닙니까? 목소리가 나쁜 게 목 탓만은 아니죠. 목수가 연장 탓하는 걸 사자성어로 뭐라고 하더라.....”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야. 이놈이.

“오다 보니깐 큰 건물들이 꽤 눈에 띄던데요.”
“재작년에 은행이랑 증권 회사가 몇 군데 들어오긴 했죠. 그럼 뭐 합니까. 저기 저 벅스와 시애틀이 들어서서는 아주 다 죽여놨어요. 거기다 대형 마트까지 생기는 바람에 주변 상가들이 아주 물똥을 싸고 있죠. 하여간 우리나라는 이게 안 돼요. 소매점부터 살려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야 서민 경제가 살고, 서민 경제가 살아야 축구도 16강에 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좌우지간 남자고 나라고 이 허리가 튼튼해야 하는데 말이죠. 하하하!”
댄디보이는 웃지 않았다. 홍 사장은 무안했다. 댄디보이는 손가락 끝으로 커피 잔을 한 바퀴 돌려보고, 찻잔 받침과 티스푼, 각설탕을 차례로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마치 와인을 시음하듯 커피 잔을 들었다. 색을 보고 향기를 맡는가 싶더니 찻잔에 입술을 댔다. 홍 사장은 왠지 긴장이 돼서 숨이 멎었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가슴이 졸아들었다. 댄디보이의 입술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상한 짓이다 생각하면서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댄디보이는 입술을 축일 정도로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맛이 어떠십니까?’라고 물으려던 말이 쑥 들어갔다. 댄디보이가 얼굴을 확 찡그렸기 때문이다. 입술을 떼었다가 다시 한 모금을 마신 뒤에는 다신 꼴도 보기 싫다는 듯 잔을 탁 내려 놓았다. 아니, 이게 뭐가 어떻다고! 홍 사장은 열이 팍 올랐다. 다른 건 몰라도 커피 맛은 좀 낸다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커피가 입에 안 맞으십니까?”
애써 미소 짓는 홍 사장에게 대놓고 댄디보이가 말했다.
“단풍잎 삶은 물 같네요.”
“네?”
“조 오래 삶으면 이런 색이 나오겠죠?”
댄디보이는 별 표정없이 말했다. 홍 사장은 그게 더 기가 막혔다. 그때 문이 왈칵 열렸다.

“아저씨! 우리 은새 못봤어요?”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녀석은 은찬이었다.
“못 봤는데, 왜?”
“아씨, 미치겠네! 이 망할 년이 어디에 처박힌 거야! 정말 여기 안 왔어요?”
“은새를 왜 여기 와서 찾아. 여기가 비행 청소년 보호소인줄 아냐?”
홍 사장은 분이 가시지 않는지 날카롭게 대꾸했다. 하지만 은찬은 흥분해서 홍 사장의 불쾌한 기색을 알아채지 못했다.

“어주. 이 또라이 자식! 이걸 어디 가서 잡지!”
“왜,또?”
“무슨 오디션 본다고 수업을 땡땡이치고 나갔대요. 어우! 잡히기만 해봐라! 면상을 변기에다 그냥 확!”
막걸리 두어 사발 들이킨 공사판 십장 같은 컬컬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이 겁대가리 없는 년이 선생님 구두를 훔쳐 신고 토꼈대요! 지는 빌려 신은 거라는데 누가 믿어요? 말 안 하고 가져가면 훔친 거지. 이 계집애는 쓴맛을 봐야 돼요!”
“고은새 간 큰 거야 삼천리가 다 알지.”
“에이씨. 어디서 그런 게 나와서! 우리 엄마 뱃속에서 내가 나온 것도 참 불가사의하지만. 그게 나온 건 정말 천재지변 아니에요? 갖고 싶은 거 생기면 애가 정신이 팍 나가는 거예요. 그래도 그렇지. 어디 교무실에서 선생님 구두를....어후!”
홍 사장은 어느새 은찬의 페이스에 휘말려 버렸다.

“오디션 보는 곳에 가보지? 거기 있을 거 아냐.”
“거기서 오는 길이잖아요. 지금. 어우!”
은찬은 머리를 쥐어뜯더니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흰 도복 위에 점퍼 하나를 걸친 차림이었다. 3월이 다가오는데도 새벽녘에 눈이 와 바람이 제법 쌀쌀했다. 그런데도 은찬은 땀이나 이마가 번들거렸다. 바람을 일으키며 들어온 은찬은 곧장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셨다. 꿀꺽꿀꺽 달게 마시더니 크윽 하고는 입을 닦았다.
“1번이라서 첫 번째로 오디션 봤대요. 엉망진창. 하여간 걔는 집에서는 잘하다가 오디션만 보면 꼭 염불하는 것처럼 노래하잖아요. 오디션 보다 말고 바로 좌절해서 뛰쳐나갔대요. 해미가 뒤쫓아 갔는데 없더래요.“
“참, 속 어지간히 썩인다.”
“아무튼 나타나면 바로 전화 때려주세요. 다리 한쪽을 분지르는 한이 있더라도 꽉 좀 잡아두셔야 돼요. 아시겠죠?”
“은새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노력해 보마.”
“그럼.수고.”
은찬은 홍 사장이 뭐라 대꾸할 새도 없이 휙 나가버렸다. 그래도 가게 안에는 은찬이 몰고 온 찬 기운과 흥분이 둥둥 떠다녔다.

“녀석 참....”
홍 사장은 은찬이 말은 저렇게 우락부락하게 해도 동생이 걱정돼 찾아 헤매는 것인 줄 다 알았다. 도와주고 싶어서 은새가 잘 가는 PC방에 전화라도 넣어볼까 했다. 은찬이 벌써 둘러봤을지도 모르지만.....그런데 별안간 문이 벌컥 열렸다.

“아저씨 알바 구해요?”
간 줄 알았던 은찬이 문을 붙들고 서 있었다.

“어? 어....어.”
“그럼 진작 나한테 말을 했어야죠. 저 알바 구하는거 몰랐어요?”
갑자기 은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뽀얀 얼굴에 유난히 새까만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덜렁대고 터프하긴 해도 얼굴은 미소년 타입이다. 인근 여학교에서는 고은찬 모르면 왕따를 당할 정도다. 무슨 날만 되면 은찬이 다니는 도장 앞은 문전성시다. 여학생들이 번호표를 뽑고 대기할 만큼 인기가 많은, 참 황당한 녀석이다.

“어. 근데 조건이 뭐 이래요? 175cm이상? 음.....간신히 되겠다. 제가 아직 성장기잖아요. 안 재봐서 모르겠지만 아마 174.5cm쯤 될걸요. 반올림하면 되죠?”
“어.그게....”
“얼짱 몸짱 환영?”
은찬은 홍 사장의 눈이 카메라라도 되는 것처럼 이리저리 얼굴을 돌려 보이며 말했다.
“제가 모 인터넷 사이트에서 얼짱으로 9주간 1위한 거 아시려나?”
“듣긴 들었지.”
“사실이거든요. 3년 전이지만.”
은찬은 유리문에 붙은 광고문을 조목조목 읽어 내려갔다.

“살인미소, 미소천사 환영. 아, 통과. 누님들한테 인기 많은분 대환영. 이것도 통과. 와, 진짜 웃긴다. 개인기 있을 것. 여자 친구 없을 것? 뭐가 이렇게 까다로워요? 아저씨, 혹시 에이전시 차렸어요? 연예인 키우게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사실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광고문의 내용은 가게에 새로 들어올 주인이 이메일로 보내온 것이다. 은찬은 홍 사장에게 투덜거리며 옮겨 적었다. 처음에는 지금 은찬의 반응처럼 홍 사장도 기가 막혀서 웃었다. 그리고 똑같이 생각했다. 무슨 연예인 뽑나.

“시간당 5천 원. 저, 정말이에요? 점심, 저녁 제공에 시간당 5천 원? 와! 완전 두배네. 아저씨, 나 할게요. 내일부터 당장 할 수 있어요. 나 시켜주세요. 네?”
“야, 똑바로 다시 읽어봐. 남자....”
“한마디로 킹카여야 한다 이거네. 음..........딱 날 위한 알바구만.”
홍 사장은 어이가 없었다. 남자 직원을 구한다고 분명히 써 놨는데 도대체 저 녀석은 목욕할 때 거울도 안보는 걸까? 스물네 살이나 먹은 처녀애가 아직 제 정체성을 못 찾고 헤매고 있으니 안타까울 노릇이다. 아예 본인이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장사가 어지간히 안 되긴 안 되나 보네요. 별 이상한 방법을 다 쓰고.”
“그거 내가 구하는 거 아냐.”
“그럼요? 다른 가게에요? 혹시?”
은찬이 홱 째려보더니 가게 안으로 쓱 들어왔다. 순식간에 홍 사장 옆에 와서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 속닥거렸다.

“혹시 호스트바?”
“야, 말 되는 소리를 해라. 호스트바에서 시간당 5천원 주냐?”
“아니 그게 아니라, 5천원은 가욋돈. 그러니깐 팁 말고 월급 개념으로....”
“왜, 호스트바라면 더 당겨?”
비웃음을 띤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놀란 홍 사장과 은찬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댄디보이를 보았다. 의자에 거의 눕다시피 거만하게 앉은 댄디보이가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일어섰다. 큰 키를 자랑이라고 하듯 못을 반듯이 세우고는 쭉 뻗은 다리로 다가왔다.

“으, 으아락!”
별안간 은찬이 킹콩이 포효하는 소리를 냈다. 바로 귓가에서 그 소리를 들은 홍 사장은 아예 뒤로 나자빠졌다. 심장이 벌렁 거리고 귀가 먹먹했다. 은찬은 새파랗게 질려서 댄디보이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못 믿겠다는 듯이 말했다.
“벼, 변태 배추벌레?”
순간 댄디보이의 눈이 험악해졌다. 그러고는 웃는 건지 노려보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은찬에게 다가갔다.

“웬 도복? 요즘은 차력 쇼 하나 보지?”
“뭐? 이씨이....”
“아님 앵벌이 제복인가?”
은찬의 두 주먹이 불끈 솟아올랐다. 눈에는 쌍불을 켜고서 여차하면 앞발을 휘두를 태세였다. 홍 사장이 보기에는 은찬이 그럴 만했다. 태권도 사범의 위엄찬 도복을 보고 앵벌이 제복이라니. 그 자식 말버릇 한 번 고약하네.

“어쭈. 폼음 그럴싸한데?”
“여긴 웬일이십니까. 도련님? 카펫이 안 깔린 바닥을 걸으면 발바닥 아프다면서요?”
은찬이 저답지 않게 비아냥거려도 남자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괜찮아. 워낙 좋은 수제화를 신었거든. 넌 죽었다 깨나도 못 신을 고급 수제화. 근데 이 자식이 아까부터 자꾸 노려보네. 인마, 눈에 힘 안 풀어?”
“아니꼬우면 한판 뜨시든가.”
“뜨긴 뭘 떠. 수제비를 뜨냐, 십자수를 뜨냐, 쪼그만 게 아주 건방을 떠는구나. 아르바이트하고 싶으면 눈 까는 게 좋을 거다. 식충아.”
“뭐!”
댄디보이는 빈정거리는 표정을 남기고 홍 사장에게 말했다.

“며칠 전에 계약한 최한결입니다.”
“아, 네.....”
홍 사장은 얼떨결에 악수를 했다. 그러다 주방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댄디보이를 보고서 다시금 깨달았다. 사장을 대신해 계약하러 온 사람이 계약서에 쓴 이름은 최한결이었다.
“뭐예요. 아저씨? 저 재수 없는 배추벌레가 뭐라는 거에요?”
“응? 그게.....자기가 이 가게 주인이라는 것 같은데....”
“예에? 허, 참! 웃기셔! 저 인간 아직도 시차 적응 안 됐나보네.”
“가게를 팔긴 했어.”
“아, 아저씨.....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