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하 시인의 글을 접한 것은..막; 혼자 감성이 자라고 있을때였다.
누구나 그럴 때는 혼자 예민하고 혼자 아픔을 다 짊어진 거 같고 그래서..혼자 힘겨워할 즈음이었나.

그대가 떠나야 한다길래 난 미리 아파했습니다.
막상 그대가 떠나고 나면 한꺼번에 아픔이 닥칠 것 같아 난 미리서부터 아픔이 대비했습니다. 미리 아파했으므로 정작 그 순간은 덜할 줄 알았습니다. 또한 그대가 잊으라시면 난 그냥 허허 웃으며 돌아서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미리 아파했으나 그 순간은 외려 더 했고 웃으며 돌아섰으나 내 가슴은 온통 눈물밭이었습니다. 얼마든지 견디리라 했던 그리움도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 없어집니다. 이제 와서 어쩌란 말인지... [우리사는 동안에 中]

이 글을 발견하게 되면서 왠지 아파하는 건 나뿐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이 책은 후에..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며 선물로 주었던 책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이정하 시인의 책은 나에게 특별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직 피어있습니까, 그 기억...
제목부터가 왠지 심상치않음을 느끼게 해준다. 게다가 왠지 아직 그때 이정하 시인의 글을 읽고 가슴설레하던 그 시절을 나를 기억하고 있느냐고 묻는 거 같아서 혼자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직 그 때의 나를 기억하느냐면..기억속에 존재는 하지만 그 때의 그 감정까지 다시 불러오기는 힘들다. 왜냐면 그 때의 나와 현재의 나는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이다. 가능하다면 그 때 그 시간으로 가보고 싶은 생각은 있다. 그 때의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감정으로 하루하루를 지내왔던건지 그 때의 나의 이슈는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이정하 시인은 행복한 사람인 것이 자신이 쓰는 글에 누군가가 가슴아파하거나 혹은 용기를 얻거나, 기뻐할 수 있다는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존경스럽고, 또 부럽기만하다. 나는 평생을 살아도 그런 글을 쓸 수 없을 거 같기 때문이다.

이 책이 더욱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이수동화백의 그림이다. 언제부터인가 글과 그림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글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그림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글과 그림..이정하 시인의 아름다운 사랑시에 걸맞는 이수동 화백의 그림은 눈을 더 행복하고 즐겁게 한다.

01234567891011121314151617
이수동 화백의 그림들
그림 하나하나 다 버릴 수 없는 놓칠 수 없는 색감이라고 해야하나..이정하 시인의 글과 그림을 함께 본다면 더욱더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지 않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초여름, 그렇게 너를 만났다. 며칠을 맘에 들려고 노력하며 나에게 최선을 다하던 너를 만나는 것은 부담이었다. 내 어린 친구,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함께하던 너는 나에게 남자는 아니었다. 내가 너의 기억에 첫사랑으로 남아있었다해도 그건 이미 지나가버린 어린 시절의 추억에 불과했다. 나는 그 모든 환상을 깨주고자 너를 만났다. 니가 생각하던 그 어린 계집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그래서 니가 나에게 실망했다는 말을 들을 작정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건방진 사람처럼 보이기위해, 왠지 그때는 담배피는 여자는 어딘가 건방져보이고 되바라져 보이는 이미지였기때문에 주저없이 담배를 꺼내들던 나에게 니가 건 낸 책 두권..<우리사랑하는 동안에1, 2>였다. 혹시라도 너를 만나자 마자 너에게 이 책을 받는다면 너는 아마도 지금의 나도 맘에 든다는 표시일거라고 너를 만나러 가는 버스안에서 나는 왠일인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건 네 마음이라고 그래서 받으면 안되는거라고, 그치만 이내 혼자 김칫국을 들이키는 사람인 거 같아서 접어버린 생각이었는데 그 표지를 보자마자 나는 다시금 그 생각을 했었다.

그걸 받으면 안되는거였다. 그건 단지 책이 아니라 네 마음이라는 것을 내가 모르는 것이 아니기때문에 나는 한참을 망설여야했었다. 그 책을 받는다는 건..너를 내 어딘가에서 허용하겠다는 소리였고, 하지만 그런 나에게는 조금 시들하긴 했지만 남자친구가 있었다. 하긴 너는 그걸 모르는 사람도 아니었지 알면서도 너는 그 책을 나에게 건네 준거니까..니 눈빛이 너무 애절해서라고 해두자. 그 책을 받은 이유는..

집으로 돌아와 펼친 책 안에 들어있던 네 사진을 보고 피식 웃어버렸다. 많이 컸구나...그때 늘 내 짝이 되어주고 똘똘하게 문제를 맞추던 너가, 이렇게 어른이 됐구나..근데 왜 나니..니가 좋아하는 사람..니가 이렇게 좋아할 만큼 나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나는 이 사랑의 결말을 알고 있었다. 결국 상처입는 사람이 생겨야 끝난다는 걸, 근데 그게 너라는 걸 나는 이미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 책을 통해 전해준 니 감정을 거절하지 못한 건 나의 실수..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말로 너에게 이제 만날 수 없음을 얘기하고 내 가슴이 아려 내내 차마 견딜 수 없었다. 언제든 기다리겠다는 네 말이 자꾸만 가슴을 옥죄어왔다.

그 책을 보는 것도 잠시간 고통이되서 나는 서랍안에 넣어두고는 내내 너를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다. 나의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어줍잖은 감정이었을 뿐이었지만, 그래도 그 책을 버리진 못했어. 그래서 아직 니 사진이 꽂혀진 그대로 나 가지고 있다. 그게 너에 대한 나의 마지막 예의같아서..또 그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던 책이였기때문에 더욱..넌 잘 지내고 있을까? 우리가 그 때 만나지 않았다면 아직도 아련한 어린시절의 기억으로 가끔 너를 떠올리며 넌 뭘할까.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를 궁금해 했을텐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정하| 1987년 경남신문,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한 사람을 사랑했네』
산문집 『우리 사는 동안에』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날들의 풍경』
장편소설 『나비지뢰』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
이정하 시인이 신작 산문집 [아직 피어 있습니까, 그 기억]으로 이 시대 사랑의 감성을
얘기합니다. 책에서 저자는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아파하고 그래서 더 기운을 얻어서
다시 사랑하라고 제시합니다. 사랑이 시대와 공감하며 존재하는 방식은 사랑으로 인한 ‘상처’
를 응시하고 그것과 마주하는 것.이며 이러한 상처와 고통은 사랑과 다른 것이 아닌 사랑의
치유되는 동시에 나아가 삶의 존재하는 이유라 말하는 그의 글은 잔잔한 공감으로 다가섭니다.
감성적인 이정하의 글과 서정적인 분위기와 시 같은 여운을 남기는 이수동의 그림
주는 절묘함이 어우러져 펼쳐지는 [아직 피어 있습니까, 그 기억]. 이수동의 꿈, 시, 착시 같은
그림은 처연한 사랑을 몽환적이게 하는 완충장치로서 이정하의 글에 영감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내 삶이 새로 시작되었지만 거기에 나는 없었다.
당신만 있고 나는 없었다. 오로지 당신을 통해서만 내가 있다는 게 확인될 뿐이었다.
내가 미처 선택할 틈도 없이 내 삶은 그렇게 바뀌었다. (18-19쪽)
이룰 수는 없었지만 그를 사랑할 수 있었고, 또 그로 인해 가슴 아파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어쩌면 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살아가면서
유일한 가난함은 가슴에 사랑이 없는 것이겠지.
그래서 그대가 고맙다. 당신을 사랑하게 돼서 참으로 다행이다. (52-55쪽)
가지려고, 소유하려고 하는 데서 상처받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서로 적당한
간격으로 떨어져 서 있는 나무처럼 그래야 서로에게 그늘을 입히지 않고 그 사랑이
오래 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 것이다. (130-131쪽)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사실 그 사람을 주의 깊게 지켜본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당신의 관심 속에서 그 사람을 매일매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236-237쪽)